프리다 칼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삶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하여 많은 이야기의 소재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삶이 주목받게 되는 원동력은 그의 예술적 결과물들이 시대를, 여성의 입장을, 약자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상징성에도 있다.

한국에서 지금 프리다 칼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프리다 칼로의 삶뿐 아니라 그의 작업세계를 한층 더 깊게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작품 속 주제들이 모여 프리다 칼로의 예술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레플리카라는 키워드를 시작으로 정물, 동물, 자화상으로 나누어 대표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레플리카(Replica)의 가치

성남문화재단과 디자인민이 협력한 이번 전시 ‘비바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미술의 국보급 화가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예술세계와 삶을 동시에 조명한 전시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이점은 프리다 칼로의 대표작 50점을 레플리카로 전시한다는 점이다. 레플리카 replica란, 교육과 체험 등의 목적으로 원작을 특수 복제하여 제작한 것을 말한다. 실제 원작이 아니지만 레플리카로 대체된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과 삶을 읽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시각물의 복제 기술이 고도화되었다는 점도 눈길이 가지만 원작에 대체되는 경험으로 전환하는 전시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반출금지된 그리고 소장처가 다양히 분포되어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많은 원작을 한자리에서 관람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번 전시의 특징이라 할만한 것은 프리다 칼로의 작품초기에서 시작된 그녀의 화법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녀의 인생의 흐름을 한 장소에서 연결지어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생으로 멕시코에서 태어나고 1954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올해가 프리다 칼로의 사망 70주년으로 저작권법에 의해 레플리카 전시가 가능해 진 것이다. 최근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컨텐츠는 인상주의 작가들의 이미지들에 움직임을 주거나 전시공간 전체를 입체적으로 감싸는 이미지들로 재편집해 새로운 미술감상 컨테츠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저작권에서 자유로워진 작품들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원작의 가치가 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한 미술이지만,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분야에선 레플리카마저 또 다른 예술적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레프리카 전시 콘텐츠는 꽤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은 방식의 전시 형태이다. 천안의 독립 기념관이나 윤봉길의사 기념관들의 많은 소장품들도 레플리카로 대체 운영된다는 점을 보면 복제품으로의 전시가 시각적으로 뿐만 아니라 전시의 효과를 올리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둘 만 하다.

정물

영국의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대표적인 히트곡 <Viva la Vida>는 프리다 칼로의 1954년 작품인 수박 정물화에 새겨진 문구를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어로 비바는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찬미할 때 쓰는 표현으로 프리다 칼로가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동안 갈채 하는 삶의 예술적 아이러니를 반영하고 있다. 리드 싱어 크리스 마틴은 “프리다의 강인함, 손상된 척추, 10년간의 만성적인 고통을 언급하며 수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인생만세가 적힌 수박 그림을 시작했다” 고 말했다. 붉게 물든 달콤한 수박의 뾰족한 절단과 이름을 새겨 넣은 단면은 자신의 인생의 고통스러웠던 면을 승화시킨다는 해석이 따른다. 프리다 칼로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8일 후 사망하여 유작이 되었다.

전시장에는 이렇듯 정물화만을 보여주는 섹션이 있다. 앞서 설명한 과일뿐 아니라 앵무새와 같은 동물도 다수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많은 해석을 품고 이지만, 프리다 칼로가 자신의 나라와 문화에 대단히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 눈에 봐도 이국적인 다양한 열대 과일은 멕시코의 풍토와 문화로부터 선택된 것들이다. 프리다 칼로의 비극적인 삶과 상반된 풍부한 생명력이 대비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전시를 보고 있노라면 한 사람의 삶이 오직 하나의 감정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은 오히려 한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이뤄지고 있는 듯 보인다. 더 많은 기쁨과 더 깊은 슬픔을 느낀 한 예술가의 세상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동물

고양이, 강아지, 앵무새, 독수리, 사슴, 다람쥐 그리고 거미 원숭이까지 듣기만 하면 동물원의 사육 목록인 것 같지만 이 동물들은 프리다 칼로의 반려 동물들이다. 자신의 정원과 집에서 수많은 동물들을 키웠고 마치 낙원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였다. 침대 위와 집 주변에만 머물러야 했던 그녀의 대부분의 일생을 함께했던 동물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동물들은 투병 속의 절망을 함께한 동료이기도 하며 평생 간절히 원했던 아이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와 가족들의 제안으로 그리기 시작한 그림 속의 동물들은 바로 그녀의 삶을 구원하는 사랑과 온기의 존재들인 것이다.

나아가 그의 작품 속 동물은 고대 멕시코 신화를 상징하기도 하여 개인사뿐 아니라 더 큰 영역으로 뻗어간다. 특히 원숭이는 멕시코 문화에서는 보호와 충성을 상징하는 동물인데,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에 같이 등장하기도 하여 다시금 그의 멕시코 문화와 그 신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자화상

“나는 나를 그린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진가였던 아버지 덕에 어렸을 때부터 사진 속 모델이 되는 것에 익숙했던 프리다는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혼자 거울을 보며 자세를 취하고 자신을 바라보며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점점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스스로의 내면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데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치를 달고 그 위에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거울을 달아 그림을 그렸다. 긴 병상 생활동안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프리다는 눈을 뜨면 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자화상 작품은 55점으로 그의 작품의 무려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 한 후 프리다 칼로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 일 것이다.

<두 명의 프리다> (1939)

멕시코의 대표적인 벽화 작가로써 명성을 날리던 디에고와의 결혼은 프리다 칼로의 화풍에서도 그 영향력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바로 여러 상징을 통한 멕시카니즘의 경향이었다. 사회주의 활동을 이어가며 멕시코 사회를, 때로는 자신의 삶을 그려 넣으며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직시하며 온갖 고통 속에도 또렷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눈, 황량한 분위기의 기호들 사이에 올곧이 서있는 자신의 모습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병상 속에서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대상이다.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지속한 그림 그리기가 곧 자신의 인생 자체가 된 것이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섹션으로 향하게 되면 그가 썼던 그림일기를 마주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질투심, 분노, 그리움과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의 일기를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이번 전시는 레플리카 전시로서 충분한 가치를 내뿜고 있다. 1984년 멕시코 정부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국보로 지정하며 국외 반출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전시회의 형식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2025년 3월 16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에서 펼쳐지는 프리다 칼로의 이번 전시는 마지막 그의 자화상 속 모습처럼 화관을 하며 인증샷을 찍어볼 수 있는 포토존과 강렬하고도 유니크한 굿즈샵도 있으니 놓치지 않도 모두 방문해보길 바란다.

글. 이지현

아티스트 인사이트ㅣ비바 라 비다 프리다! Viva Frida Kah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