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rtesy of Artist and THEO

경계를 밟고 선 풍경의 사이

1989년 루마니아의 라도우츠에서 태어난 미르체아 텔레아가는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루마니아 혁명의 해에 태어나 공산주의 하에 유년기를 보내고 자본주의로 전환된 새 사회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어 가고 있다. 그가 그린 풍경, 이 인간이 없는 풍경화는 개인과 집단이 사라진 상태이지만 충돌의 정점에 잠시 비껴있는 찰나의 고요처럼 느껴진다. 도시 환경과 풍경의 모습이 겹쳐지는 화면은 능숙함과 격렬함, 불투명과 투명, 명확한 공간이지만 파괴적으로 느껴지는 균열의 표현까지 균형을 맞추며 다양한 그림의 형태 변화를 담고 있다.

미르체아 텔레아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지낸 루마니아 북부에서의 환경적 경험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그가 13살 되던 해, 시골로 이사해 짓게 된 집의 토대 작업 중 땅 속에 묻힌 금속 물체를 삽으로 파헤쳤는데 그것은 오래되고 부식된 탱크와 포탄들이었다고 한다. 땅을 파면 끝없이 나오던 그 탄피들은 작가가 자신만의 것으로 인식했던 장소들이 사실은 아주 복잡한 대상이고, 더 중요한 것은, 분리된 생명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거대하고, 깊고, 웅장한 숲 그리고 오래된 콘크리트 산업 유적과 함께 현대주의와 실용주의 건축물, 개방된 대형 공간과 국경의 불확실성을 작업으로 가져온다."

미르체아가 묘사한 공간은 완전한 시골 풍경이나 도시 풍경이 아니다. 전신주, 전선, 첨탑이 자연 속 나무들의 동반자가 된 이 풍경은 도시가 시골로 변하거나, 시골이 도시에 침범 당한 곳의 경계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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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지대에서 발견된 확장성

"나는 항상 큰 도시의 맥락에서 작업을 해왔고, 밀집된 지역 안에서 내 작품은 여전히 어떤 종류의 강한 공허함, 고립감 나아가 고요함을 참조한다. 나의 작업에는 실제로 인물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왜 그런지, 그것이 어떻게 그런지 알아 가고 있다. 내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내 작업이 어떤 결과로 향하게 될지 나 또한 더 많이 보고 싶다."

경계의 본질을 제작하는 것은 이것들이 자체적인 상징체가 되고 함께 볼 수 있는 환상이라는 인상을 강화한다. 종종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는 기묘한 형태의 기하학적 모양들은 인물, 건물 또는 자연 형태를 대신 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tin Brâncusi)의 대표적인 작업 '끝없는 기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미르체아 텔레아가의 작업에서도 이미지의 반복적인 등장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그가 다루는 요소들은 제작 시간과 장소, 그리고 정신 상태와 연관된 독특하고 구체적인 것들이 많으며 이를 어떻게든 복제하려고 시도할 때 여러 가지 변형이 나타나곤 한다. 그렇게 많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그리는 것은 복제되는 원본 이미지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 모든 변형은 원본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반복은 복사가 아니며 반복은 음악처럼 확인된다고 그는 말한다.

무언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는 반복, 멈출 이유가 없는 그 반복을 통해 주제는 더욱 선명한 타당성을 확보해 나아간다. 미르체아가 추적하는 실제 주제는 그린 것과 그려진 방식 사이의 끊임없는 연결로 인해 그렇게 이해되어 가는 길목에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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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등장하는 황폐하고 무시된 구석들 또한 어둡고 불확실한 땅 위에 우리가 잠시 머물다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있는 곳이다. 사회 체계가 전환하는 시대를 살아온 텔레아가에게 그림이란 그저 쓸모 없는 것이지만, 예술가로서 텔레아가에게 그림은 현시대를 깨우치는 중요한 도구이다. 종종 그의 작업이 표현과 추상 사이의 연약한 경계에 위치 되기도 하지만 팬데믹으로 핡퀴고 지나간 상흔으로 인해 미르체아의 '무인지대’는 예언적인 면모로 까지 해석의 여지를 확대해 나아가게 된다. 낭만적이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이며 그의 그림을 통하여 관객은 현실과 상상 사이를 통행할 수 있다. 때문에 그의 그림은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류가 걸어가게 될 여정에 힌트를 갖게 하는 ‘쓸모 있는 것’이다. 그의 회화 속 이미지들이 비록 버려진 듯해도 결코 텅 비어 있지 않으며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우리의 미래와 대신 남겨질 수 없는 것들의 무게를 지고 있다.

불안한 물감이 쌓이고 흘러간 곳

미르체아의 풍경에는 명확한 엔트로피의 감각이 있다. 미지의 것으로 보이는 이 이미지들은 두꺼운 물감으로 덮히거나 희석제에 의해 소멸되며 재창출되기도 하며 페인팅 내의 다른 행동에 의해 계속해서 부정되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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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색상을 얻기 위한 회화적 실험들 또한 눈에 띈다. 카드뮴 레드, 검정 및 흰색을 조합하는 방법의 경우, 이 조합은 하늘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하나는 황혼의 시작을 시사하는 부드러운 핑크색으로 다른 하나는 폐쇄적인 분위기의 회화에서 더 많은 붉은색을 함유하여 훨씬 더 '뜨거운' 경향을 나타낼 때사용 되었다. 추상화와 형상화 사이에 위치한 화가로서 텔레아가가 제시하는 풍경은 암호적인 수수께끼와 유추 불가능한 설명이 내재된 심리들이 충돌하고 있다.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두꺼운 물감 층과 가벼운 붓 터치로 희석제가 흥건한 물감이 얹어져 있다. 최근 작품에서는 물감이 발린 것만큼 제거되기도 하고 용해되어 캔버스를 따라 쏟아져 내리며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미르체아는 추상적이며 불명확한 출처의 어딘가에서 새어 드는 빛을, 모호하지만 약간은 익숙한 공간을 화면 위에서 작위적으로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공간은 그 공간 속으로 데려가는 물감의 유혹 때문에 매력적인데 회화에서의 이 공간 속 무엇이 회화되고, 그 회화가 어떻게 회화가 되어 가는가 하는 질문 사이의 ‘불가분의 연결’이 미르체아 회화의 실제 주제임을 증명한다. 물감이 갖는 질감, 재질, 빛과 볼륨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로써의 능력을 한껏 드러내는 그의 회화는 최근 작에서 상상 속 실내를 그려 다양한 소재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쓸모 없는 그림의 운명을 담론으로 끌어들이며,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그림이 쓸모 없는 것을 숭배하는 초월적 경험을 가능케 한다고 믿는 것이다. 대부분 회화의 아름다움이 그 쓸모 없음에 있다는 점을 경각시킨다는 텔레아가는 작품 내에 나타나는 한정된 수의 모티프가 수정 반복되고, 새로운 작업은 이전 작업을 재검토하면서 미래가 과거를 수정하고 현재에 고스란히 내재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부유하는 이민자, 여정 속에 성장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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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체아 텔레아가의 삶은 주로 해외에서 보내지고 있다. 2016년 런던의 슬레이드를 졸업 한 후, 리 알렉산더 맥퀴 Lee Alexander Mc Queen 재단인 사라반데 스튜디오Sarabande에서 2년 동안 레지던시를 하면서 화가로서의 능력이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다양한 작업의 방향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된 해외 레지던시는 홍콩, 노르웨이 그리고 서울 등 루마니아를 떠나 작가로서의 삶을 확장시키고 있다. 윌리엄 다비(William Davie)와 협력하여 2018년 4월부터 5월까지 개최된 전시 <존재감>은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유화 작품을 텔레아가의 회화에 대한 다양한 사고 방식을 입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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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과천 스페이스K 에서 열린 기획전 ‘감시자의 눈: Romanian Eyes’에도 참여한 작가는 미술 작품으로 체험된 루마니아의 현대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내었다.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동유럽 컨템포러리 미술의 단면을 보여준 이 전시를 통해 2차 대전 이후 전쟁의 흔적과 개방, 사회 체제 변화와 산업화, 도시화의 이면을 집중 조망하였다. 전원과 도시 사이에 놓인 무명의 풍경에서 그가 발견해내는 루마니아의 초상은 우연적 스침처럼 보이지만 국가적 트라우마가 집단 심리의 기저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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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루마니아 혁명 연도에 태어난 작가의 청년 시절과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격동적인 전환기에 대한 배경은 개인적 기억이 집단적 역사와 충돌하는 전장으로 형성되었기에 외부 세계가 내부 세계를 묘사하거나 반영하는 것으로 유추 가능하다. 태생적으로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작가에게 영토는 ‘가정’과 ‘집’의 개념은 일반적이고 안전하지 않다. 추상과 구상 사이의 경계를 넘어 침범 당한 전원, 공상과학적인 요소들이 묘사되며, 장식성과 관계없는 물질주의와 산업화의 상징들을 나열,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정해지지 않은 미래로 이끈다. 미르체아 텔레아가는 사회주의의 영향과 혁명 이후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 그리고 좌절을 경험한 세대로서 과거가 현대, 지금, 자신에게 남긴 과제를 하며 진지하게 성장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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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특별히 한국에서 개인전을 새롭게 준비했다고 한다. 갤러리 띠오에서 2024년 3월 23일부터 4월 19일까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의 흔적이 남겨진 신비하고 기이한 풍경, 경계 그리고 유리 속 소정원 '테라리움'을 주제로 한다. 이번 전시 제목은 어스름한 시간에 개와 늑대를 구별하기 어려운 순간을 의미하며, 작가는 이러한 '경계 시간'에 존재하는 장소들을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글. 이지현

아티스트 인사이트 16ㅣ루마니아 MZ작가가 그려낸 상상 이상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