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핫한 뉴욕의 큰 언니
Photo by OnArt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작가들 중 가장 핫한 포토그래퍼이자 화가로 분류되는 마릴린 민터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군림하고 있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태어나 플로리다에서 자란 이 작가는 76세의 나이에 걸맞게? 디지털 사진을 찍지 않고 암실 작업을 통한 사진 작업 위에 페인팅을 곁들여 극사실화를 제작한다. 그의 작업들은 대게 과감하게 사용하는 색감으로 어필하고 세련된 장면의 구성으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잔상을 남긴다. 작가의 사전 정보를 알지 못한다면 절대 나이나 세대를 유추하기 힘들 정도로 트랜디한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1948년 생인 마릴린 민터는 사진, 회화, 영상, 설치 작업을 통해 여성 묘사에 관한 미묘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경력은 플로리다 대학에 재학하는 동안 시작된다. 다이안 아부스의 지도를 받았던 그는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와 관련된 일련의 사진 연구를 만들었다. 나중에 시라큐스 대학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6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독일 표현주의 화가 크리스토프 코호퍼와 협력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초기 작업에서 민터는 주류의 남성 예술가들이 남성 소비자를 위해 주로 그렸던 에로티카를 탐구했다. 이 탐구는 여성 소비자들이 전유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에로티카를 구축하는 것으로 전개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당시 그의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와 행보가 늘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착취적 이미지를 통해 상실된 성적정체성을 평등하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15년 아트포럼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성차별에 연루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성적 이미지를 소유한 여성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에 놀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릴린 민트는 여성권과 생식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여성이 스스로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여성 신체의 복권과 과거 여성을 대상화한 남성의 관음적 시선을 전복시키는 데 앞장섰다.
Photo by OnArt Studio
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집요하게 파고드는 신체와 현실 폭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휴스턴 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하여 덴버 현대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으로 순회한 회고전 <Marilyn Minter: Pretty/Dirty>로 학문적인 인정과 호평을 받게 된다. 기술적 정교함과 완성도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체모와 튼 살 같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적 특징을 강조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대중 매체 속 여성 이미지에서 제거하고 부재해야 하는 대상이었으나, 이를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 정제되지 않은 모습으로 작품에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그의 회화는 사진을 복제하지만 초점원리 같은 사진의 문법을 회화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 형식을 미묘하게 변경해 나간다. 예컨대 작가는 반투명한 에나멜 페인트를 수천 번 덧바르는 기법을 통해 김이나 서리 같은 장치의 농도를 더하고, 이미지의 시점을 이동시킨다. 회화적 접근법을 역으로 사진에 적용하는 그는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에 유리판을 배치해 화면을 흐리게 하는 물리적 장막을 형성하며 능숙하게 추상의 요소를 이미지에 도입했다.
과거 시각문화에서 여성을 형상화한 방식에 대한 도전 외에도 마릴린 민터의 작업이 가지는 특징이 잘 드러난 지점은 바로 이처럼 다양한 매체에 능한 작가의 노련미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과 회화를 모두 전공한 작가는 인물을 포착한 일련의 사진을 더 큰 규모의 회화로 옮겨내는 독특한 작업체계를 확립해 나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진보적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오랜 시간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엄격하게 수행해 온 작업 방식을 통해 현재까지도 여성 신체를 둘러싼 통렬한 현실을 폭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진화하는 미디엄과 협업을 통한 확장
마릴린 민터의 사진과 작품에는 성적인 내용과 에로틱한 이미지가 듬뿍 포함되어 있다. 필름으로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그의 작업들은 디지털 조작을 피하고 대신 스틸 현상을 위한 전통적인 암실 작업 과정은 선호한다. 사진을 자르거나 디지털 방식으로 조작하지 않는 반면에 포토샵에서 네거티브를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새로운 이미지는 또 다시 알루미늄 위로 옮겨지고 에나멜 페인트를 겹치고 겹쳐 만든 그림으로 변신한다. 작가와 어시스턴트들은 새로 생성된 디지털 이미지에서 직접 수작업을 반복하며 마지막 레이어까지 붓선을 통해 부드럽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현실을 은폐하고 정제하기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를 택한 여성성을 둘러싼 프레임의 재구성은 지속적으로 변신과 진화를 통해 세상에 드러내기를 도모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업들은 ‘오달리스크’나 ‘목욕하는 여인’ 같은 미술사적 고전 속 상징적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하고, 특유의 시각 어휘를 발휘해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릴린 민터는 경력 초기부터 수많은 미국 유명 잡지와 네트워크에 출판하기도 했으며 비디오와 잡지 사진, 광고 등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자 했다. 1990년 뉴욕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 테드 하임스가 촬영하고 감독한 첫 번째 비디오인 <100 Food Porn>을 제작했습니다. 이 영상은 뉴욕 사이먼 왓슨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를 홍보하기 위한 텔레비전 광고로 사용되었다. 갤러리의 예술 광고 예산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인쇄 광고 대신 데이비드 레터맨 쇼의 30초 슬롯을 구입하여 심야 텔레비전에 개인전을 광고한 최초의 예술가이다.
1990년대에 걸쳐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다듬었다. 여전히 포르노적인 느낌을 갖고 있으면서도 글래머러스한 느낌과 하이패션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시작했지만 1998년에는 명망 높은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 for Fine Arts)을 수상한다. 2007년에는 계간지 파켓의 의뢰로 여배우 파멜라 앤더슨의 사진 시리즈를 제작하기도 했으며 2008년에는 브랜드 수프림과 협력하여 3개의 한정판 스케이트 데크를 생산했다. 2009년에 그가 제작한 Green Pink Caviar 비디오는 사탕으로 뒤덮여 유리 표면을 "채색"하는 일련의 혀를 묘사하는데 이 영상은 나중에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상영되었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영상의 일부는 마돈나의 <Sticky & Sweet Tour> 오프닝 곡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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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사진과 페인팅 사이에서 강렬한 색채와 울퉁불퉁한 촉감으로 섹슈얼하면서도 에로틱한 이미지로 시선을 사로잡는 메릴린 민터의 작품은 트랜디함을 강조한 자신만의 강렬한 느낌으로 순수미술계를 넘어 톰 포드, 맥, 지미 추 등의 패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수용하며 예술적 깊이뿐 아니라 보다 넓은 대중문화로 까지 끝없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 상륙하는 섹슈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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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연출력과 남다른 색감으로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표출하는 작가 마릴린 민터의 색다른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고 싶다면 리만 머핀 서울에서의 개인전을 주목하기 바란다. 오는 3월 7일부터 4월 27일 한국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 여성의 입과 입술 이미지를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묘사한 신작 회화를 선보인다. 전시와 연계하여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아트바젤 홍콩에서도 작가의 주요작 일부가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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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이번 개인전에 나오는 신작들은 피사체의 초점을 흐리는 물방울과 수증기가 화면 전체에 서려 있다. <White Lotus>(2023)에서 굵은 진주와 비즈 목걸이를 착용한 인물의 열려있는 입술은 클로즈업으로 묘사하고 있다. <Gilded Age>(2023)에서는 살짝 벌어진 검붉은 입술 사이로 보석이 감입된 금속 치아가 드러난다. 여성의 얼굴, 입, 입술, 치아, 그리고 화려하게 치장되거나 다방면으로 노출된 목선의 이미지는 화면 위에 펼쳐진 형상 이면의 암시를 보이며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사적이고 친밀하면서도 낯선 경험을 주도한다.
여성 표현에 관한 담론과 매력, 아름다움의 개념에 꾸준히 천착해 온 마릴린 민터는 이제 일흔 여섯의 거목이 되어 버렸다. 그의 작업들이 상업 예술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포토리얼리즘 스타일의 관능적인 그림과 사진으로 끝없이 확장되며 구축한 작업들이 잠들지 않는 서울의 야경을 배경으로 어떤 매력을 발산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
글. 이지현
프로그램 제공자: LIFEPLUS